제5부, 6·3학생운동 관련자료. 제1장 6·3학생운동 관련 성명서 및 선언문
제1장 6·3학생운동 관련 성명서 및 선언문
서울대학교 3 .24 선언문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압제하에서 피 어린 항쟁을 통하여 전취한 해방조국의 민족자주성은 다시 제국주의적 일본독점자본의 독아에 박살되기 한 걸음 직전에 있다. 이제 우리는 조국해방투쟁의 영웅스러운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조국이 부여하고 민족양심세력의 엄숙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일본독점자본의 교활한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새로운 투쟁대열 가운데서 자신을 발견하려 한다.
한국전쟁을 밑천으로 재기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전쟁상인들은 다시 한국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책동하고 있으며 정부는 한국 어민의 생명선이며 국가존망의 국방선이며 한국 최대의 미개발보고인 평화선을 방해하여 36년 간의 압제와 착취의 대가를 6억 불로 흥정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 제국주의자가 반세기에 걸쳐 한국을 강점하면서 백만 장정을 징용으로, 군대후 노예노동으로 강제사역시키고 민족문화의 재보를 착취해가고 마지막 순간까지 금괴를 도탈해가고 은행권을 남발하는 단말마의 발악을 자행한 대가이다.
무상원조, 어업협력, 정부차관, 민간차관 등등의 허다한 조건이 붙은 6억 불이 일본 제국주의가 음모와 학살과 억압으로 한국을 병참기지로, 상품시장으로, 식량보급지후 착취해간 제국주의지들의 반성이다. 민 족문화를 절변시키고 오늘의 이 빈곤을 강요하는 파행적 경제구조를 남겼고 살인적 정치탄압을 자행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참회가 이 위장된 6억 불이란 말인가?
이제 일본 제국주의는 새로운 독점시장과 수탈의 광장을 찾아 다시 흉악한 독아를 드러내고 있다. 반세기 전 일본관헌의 총검의 협박과 위압 속에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상인들은 또 하나의 보호조 --- 갑진년 대한민국 매매조약 --- 을 체결하려 하고 있다. 피 어린 항쟁으로 해방된 조국 자주민족의 양심은 이 또 하나의 이완용을 애국자로 표창할 것인개 매국노로 처형할 것인가?
현재와 같은 유치한 단계의 한국어업이 거대한 일본 자본에 예속되고 양보된 평화선 내에서 2년 이내에 어업협력조의 2억 불을 되찾아갈 수 있으며 벌써 국내상품을 압도하는 제국주의의 상표는 취약한 민족자본을 잠식 예속시켜 저들의 매판자본화하며 일본독점자본의 저속한 광고문화는 민족의식을 마비시키고 민족문화의 맹아를 말살하게 됨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한 사실이 아닌가? 이러한 경제·문학·사회 전반적인 예속관계하에서 정부는 민족의 주체성을 약속할 수 있는 한·일회담 조기타결을 서두르는 정부는 과연 민족의 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것은 민족주체성을 성명하는 정부의 입버릇처럼 명백한 기만이다. 민족이익과 궁지를 배반하고 모든 민족적 양심의 반대 속에도 굴욕외교를 강행하는 정부가 일본 자본의 시녀로 타락하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이제 민족의 양심적 자주역량은 일본 제국주의의 독아로 조국을 유인하는 한·일회담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과학적 근거에서 청구권이 수락되고 대등한 입장에서 국교를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여하한 형태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도 한국 민족은 항구적이며 거족적인 반대투쟁을 계속할 것이며 제국주의지를 타도하고 그 음흉한 음모를 분쇄하는 성스러운 민족지주독립의 전열 속에 양심적 민족역량은 대오를 정비한다. 민족의 해방과 자립은 그를 다해서 투쟁하는 민족에게만 주어진 영광이며 이것 만이 민족의 번영과 민족사에 전진을 약속하는 유일의 길임을 확신한다.
민족양심의 표현과 정의의 실천을 우리들 생애의 필연성으로 자각해온 우리는 이 엄숙한 민족자립을 위한 투쟁대열을 과감하게 전진시킬 것이다.
1964년 3월 24 일
서울대학교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집행식
서울대학교 3·24 결의문
① 민족반역적 한·일회담을 즉각 중지하고 동경체재 매국정상배는 일로귀국 하라!
② 평화선을 침범하는 일본어선은 해군력을 동원하여 격침하라!
③ 한국에 상륙한 일본독점자본가의 척후병을 즉시 축출하라!
④ 친일주구의 국내 매판자본가를 타살하라!
⑤ 미국은 한일회담에 관여치 말라!
⑥ 제국주의 일본 자민당정권은 너희들의 파렴치를 신의 앙화를 입어 속죄하라!
⑦ 박정권은 민족분노의 표현을 날조 · 공갈로 봉쇄치 말라!
⑧ 오늘 우리의 궐기를 역사는 증언하려니와 우리의 결의와 행동이 ‘선제국주의자’에 대한 반대투쟁의 기점임을 만천하에 공포한다.
1964년 3월 24 일
서울대학교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집행식
고려대학교 3·24 선언문
우리는 오늘 공화당정부와 일본이 진행하고 있는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좌시할 수 없어 여기 또다시 섰다.
4,19의 혈흔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6·6의 봉기가 결실조차 못 본 오늘 상아탑의 전위는 또다시 피 어린 투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을 저주한다.
일제의 악랄한 수탈과 착취가 이 강토를 폐허의 초토로 유린했건만 현금 또 다시 일제의 망령이 우리의 심장을 파열시킨다.
공화당정부가 내걸었던 민족주의는 어디로 사라져 가버리고 우리의 우방 미국이 덮어씌운 면사포가 정부를 현혹한다.
우리는 정부에게 묻는다.
단군조선 개국 이래 최악의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기아의 사선을 방황하는 민족을 구할 자신이 그다지도 없는가
이것이 비밀회담이 타결될 당위인가.
이것이 민족이 생존할 유일한 활로인가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독점자본가들이 이 국가를 경제적 식민주의의 질곡과 철쇄를 덮어씌우려 한다. 평화선에 둘러싸인 우리의 푸른 바다를 반만 년에 가꿔온 우리의 금수강산을 일제에 매도하려 한다.
우리는지부한다.
일제의 철쇄에서 해방한 어엿한 독립국가인 조국을 갖고 있음을.
그러나 여기에 대등한 주권국가로서의 외교가 그 꼴이어야만 하는가.
우리의 구한말의 쓰라린 역사를 또다시 반추해야 된단 말인가.
우리는절규한다.
우리의 피 어린 노력으로 우리끼리 살아보자고 중국, 일본, 미국은 차례로 우리의 종주국이었다 우리는 종주국 없이 한 번 살아보자.
이것이 우리의 핏덩이 같은 절규이다.
일제의 망령을 박멸할 때까지 우리는 영원한 투쟁의 대열에
침여할 것을 여기서 엄숙히 선언한다
결의문
조국은 바야흐로 일인의 농간에 의해 쓰러져가는 위기에 직면했다.
겨레의 양심이 살아 있고, 민족혼이 불멸하는 우리들 항일본산의 후예들은 이제 한·일굴욕외교의 전적 책임을 정부에 묻는다.
만약 한 촌의 정신이라도 있다면 조국의 앞날을 위해 민족 정기 앞에 할복하라
4,19의 후예들은 말한다.
4,19는 살아 있다고!
대정부건의문
1. 우리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임을 알라.
1. 조국과 민족이 너희들 일인의 것이 아님을 알라.
1. 한·일굴욕회담만이 현 정부의 유일한 탈출로가 아님을 알라.
1. 우리의 자유의사를 무력행사로 짓밟지 말라.
3.24 구호
1. 평화선은 생명선이다.
2. 한국에 있는 일인 상사를 즉각 철수시켜라.
3. 국민의사를 존중하라.
4. 우리들의 자유의사를 무력행사로 짓밟지 마라.
5. 한· 일회담은 즉각 중지하라.
6. 조국은 너희들 일인의 것이 아님을 알라.
7. 연행된 학생들을 즉각 석방하라.
1964년 3월 24 일
연세대학교 3·24 선언문
국가는 백년대계요 민족은 인격체다. 민중은 역사의 바탕이요 대학은 민족양심의 최후 보루다.
우리 연세대학교는 아래 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성명운동과 더불어 범학생운동, 대대적 국민운동을 전개시킬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1. 민족긍지를 상실한 대일굴욕외교를 즉시 중단하라.
1. 백만 어민의 생명선이요 국방의 절대선인 평화션을 그 알량한 청구권과 바꾸기 전에 한·일관계의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하여 국민 앞에 명시하라.
1. 4,19이념과 민족자립경제의 반역적 망국체결을 처단하고 그 재산을 국가에 환수하여 민족자본화하라.
1964년 3월 24 일
이화여자대학교 경비정 모금운동 선언문
우리는 지금 현실을 직시합니다.
우리들은 주권을 가진 여성국민으로서 스스로 용감히 이 변화해가는 역사의 대열에 서기를 다짐합니다.
작은 땅덩어리 한국을 밑천 삼아 놀부 놀음을 하고 있는 일본에게 또 다시 상업을, 공업을, 아니 우리의 생활을 맡겨버린다는 것에 우리는 슬픔의 이를 갑니다.
값싼 영수증에 36년을 써 내려온 고통의 일기장을 내어줄 수 없고 쓰다버린 고깃배 몇 척과 이 나라의 해변을 지키는 우리 동포어부들의 밥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이익과 긍지와 또 생명을 내어주는 원한 드높은 회담이 결코 이 시기에 이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는 보장은 무엇입니까?
양심과 애국심의 표현 앞에 국민의 정치는 마땅히 귀기울여 들어야 하며 천심이 지시하는 대로 가야 할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를 판가름하는데 용감함이 지성인의 본 자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우리는 우리들의 나라와 국민을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합니다.
1. 정권의 유지를 위해 도매식 흥정을 서두르는 한·일회담을 즉시 중지하라.
1. 이 나라의 보고인 평화션을 사수하라.
1. 우리는 평화선 경비선박의 조선모금 운동에 솔선할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우리의 자세를 굳게 지켜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1964년 3월 25 일
서울대학교 4·17 선언문
왜 우리는 현 한·일회담을 굴욕회담으로 규정하고 기필코 반대하는가?
1. 정부의 저자세를 반대한다.
한·일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저자세는 회담 전체에 편재하고 있어 단적인 예로 병석의 오노(大野) 씨에게 김모씨는 ‘한약을 증정’하면서까지 이 회담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의 저자세는 가장 집약적으로 평화선 양보에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① 해양주권선은 일방적 선언으로 국제법과 국제관계에 위배되며, ② 현재의 경비능력으로는 지키지 못하니 양보하여 차라리 실리(약간의 어업협력)를 얻고자 한다. 이는 처음부터 평화선의 가치를 인정치 않는 것이며 한국정부의 주장인지 일본정부의 대변인지 구별조차 어렵다.
평화선도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위배되지 않는다.
(1) 해양주권 선언은 성질상 국제법상 단독행위이며 이해당사국의 항의로 국제사법재판소의 무효판결이 있기까지 유효하다
(2) 91개 국가가 연안해역에서의 어로 우선권과 어족조장권을 주장하며 해양주권선을 선언하고 있다.
(3) 일본 자신도 일·미·가(加) 어업협정에서 서경 175도 이동 미거안 1천 리 이상의 미 소협정에서 북위 45도 이북 전성에서 어로를 금지당하고 작년 11월 재차 협정된 일·중공 어업협정에서는 우리와 동일수역, 어족, 어법, 목적임에도 거안 60리의 금지수역을 인정하면서 유독 한국에게만 인정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4) 국제관례에는 유리한 것도 있고 불리한 것도 있는데, 자진해서 권리를 포기하고 ‘국제법의 모순’을 준수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공동수역, 규제수역 운운 하나 한국어업 능력의 20배를 넘는 일본과 한국의 어업경쟁이 불가능함은 명백
하다. 일본어선이 평화선 내에서의 노획해가는 연간 어획고는 3 만 5천만 불에 달히여 소위 어업협조의 금액을 초과하고 있다(1953년 일본수산청 통계). 이것은 일본이 제공한다는 무상원조 매년 3천만 불을 초과한다(10년 전 일본관청통계임에랴!)
2. 일본 제국주의지들의 파렴치를 규탄한다.
한·일회담은 “일본은 한국근대화에 기여 운운”의 구보다, “친자관계 운운”의 오노 등, 대정익찬회의(大正翊贊會議) 최고 간부. 동조내각의 상공대신 등 전범들이 추진해왔다. 도탈해간 민족문화재 반환도 사실상 거부하고 있으며, 문학협력 증여 운운하는 파렴치를 범하여 저들의 강제노역에 징용당했던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할 것을 거부하고 반세기의 살인적 폭압과 수탈의 대가는 금전으로 계산할 수도 없지만 국제법적인 당연한 권리인 일본의 국공채, 보험, 사채, 주식, 저금, 미수노임, 급여 등에 대한 “청구권조차 경제협력 공여의 부수적 결과로 해소된다”는 식의 파렴치 논법을 고집하고 정부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청구권,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 등의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 불법강점의 범죄적 결과임을 확인하고 그 역사적 죄악에 대한 사죄의 구체적 표현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한·일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이다.
3. 일본독점자본의 국내침투를 경계한다.
세계자본주의가 이미 독점적 단계에 들어선 다음 뒤늦게 출발한 일본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청일, 노일전쟁을 통해 성장하여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전쟁상인이다. 한국전쟁 뒤 신무, 천황 경기를 타고 기적적으로 재기한 일본자본주의는 세계 제 5위의 공업력을 가지고 조선에서 제 1위, 철광에서 제 2위, 시멘트에서 제 3위, 전력생산에서 제 5위가 되었다. 그 러나 세계경제가 배타적 무력경제를 형성하고 있는 금일, 경제권을 갖지 못하고 급격히 팽창한 일본경제는 생산과 시장의 심각한 모순에 직면하여 상품체화량은 1955년을 100으로 히여 1961년 8월에는 214, 1962년 9월에는 296으로 증가하고 있다. 체화된 폐품상품의 축적된 자본의 배설구를 찾아 혈안이 되어 중국과의 감정을 악화시켜가며 중공과 통상하 일본독점자본이 옛 식민지를 간과하겠는가
국교 이전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삼정물산(三井物塵), 삼릉상사(三菱商社), 환홍반전(丸紅飯田), 이등충상사(伊籐忠商社), 일면실업(日補實業) , 동양면회{東洋綿花), 강남상시{江南商社), 안택상사(安宅商社), 겸송상사(兼松商社) 등 40여 개 상사가 반도, 매트로, 사보이호텔에 주재하면서 본사와 텔렉스 시설까지 갖추고 여행자를 가장하여 세금을 포탈하고 음성적 불법 행위를 자행하여 한국의 교역총량의 14퍼센트 이상에 관여하여 일립제작(日立製作), 일본운수의 상품광고까
국내 매스컴을 채우고 있다. 이를 방조하고 있는 정부가 이 조수와 같은 일본독점자본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가.
4. 국내 매판성 자본의 야합을 경계한다.
매년 3, 4억 불의 원조에 의존하던 국내의 매판성 자본은 원조삭감과 함께 새주인을 찾고 있다. 취약한 국내자본이 거대한 일본자본과 야합하여 그들의 시녀로 타락하여 완전한 일본예속 경제구조로 한국경제가 개편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이권과 결부된 일본자본의 정치자금공세에 한국의 정치가 그들의 보호물을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더욱이 경제정책의 실패를 거듭한 정부는 춘궁기와 함께 오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일본자본으로 해결하려 하며 자립경제를 막는 파행적경제구조를 만든 그들에 의존하여 자립경제건설을 막는 파행적 구조를 만든 그들에 의존하여 자립경제건설을 꾀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5. 일본독점자본의 광고 문화의 침투로 인한 민족정신의 마비를 경계한다.
한·일 문화교류를 표방하고 정부의 허가하에 건너온 일본문화는 싸론파스 여자야구, 동양레이용, 패션쇼 등등 일본자본의 광고대행 문화였다. 주체성 잃은 문화정책의 결과로 젊은 세대는 재즈문화로 민족정신이 마비되고 여기에 ‘하오리’ 문화에 향수를 느끼는 몰지각한 구세대까지 그들의 옛 주인인 저속한 왜색색정문화에 빠져버린다면 민족정신이 표류할 곳은 어딘가? 일본의 경제협력으로 자립경제가 건설된다는 우상을 부셔라. 미국의 40억 불 원조의 결과가 오늘의 이 빈곤인데 3억 불 일본의 원조가 저들에의 예속시장화 외에 무엇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1964년 4월 17일
서울대학교 5·20 선언문
민족사는 바야흐로 위대한 결단을 요구히는 전환기에 섰다. 조국은 지금 민족적 전통의 이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의 과감한 투쟁을 갈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통감하고 우리 대학사의 자랑찬 전통을 계승히여 ‘빈익과부자유 그리고 외세의존’의 참담한 현실을 전진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민족적 양심의 깃발을 올린다. 4월의 항쟁 민족사적 전진을 위하여 누적되어온 정치, 경제, 사회적 제 모순을 지양하고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민족적 주체의 확고한 정립, 외세에 의존 기생한 민족반역 체제의 제거와 그리고 반봉건적 사회경제 구조의 청산을 위한 거룩한 투쟁이었다.
4월 항쟁의 참다운 가치성은 반외압세력, 반매판, 반봉건에 있으며 민족민주의 참된 길로 나가기 위한 도정이었다. 5월 쿠데타는 이러한 민족민주이념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었으며 노골적인 대중탄압의 시작이었다.
군사정권은 권력으로 민족적 양심세력의 단초적 맹아를 삭제했고 사회 전반에 걸친 독재적인 기본권의 유린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말살했으며, 사리와 사욕·부정과 부패·조작과 날조 등 모든 악의 요소를 잉태한 채 파멸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경제적 민주자유를 외치는 정부는 노동자, 농민의 소비대중에게 실업, 기아임금, 살인적 물가고를 선물하면서 매판적 반민족자본의 비만을 후원하였다.
민주주의적 민족해방운동의 과학적 이념인 민족적 민주주의는 수렵적 정보정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행상적 탈춤으로 분장되었고 굶주린 대중의 감각적 해방을 위한 독화의 미소를 띠었다.
국제협력이라는 미명하에서 우리 민족의 치떨리는 원수 일본 제국주의를 수입때 대미의존적 반신불수인 한국경제 이중예속의 철쇠에 속박하는 것이 조국의 근대화로 가는 첩경이라고 기만하는 반민족적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
우리는 전 민족의 양심이 이러한 반역적 범죄행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오늘의 이 모든 혼란이 외세의존이 아닌 민족적 자립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재확인한다
우리는 외세의존의 모든 사상과 제도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전체 국민의 희생 위에 홀로 군림하는 매판자본의 타도 없이는, 외세의존과 그 주구 매판자본을 지지하는 정치질서의 철폐 없이는, 민족자립으로 가는 어떠한 길도 폐쇄되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한다.
민족적 긍지를 배반하고 일본 예속화를 촉진하는 굴욕적 한·일회담의 즉시 중단을 엄숙히 요구한다.
우리의 지성과 양심은 민족이익에 역행하는 어떠한 기만도 왜곡된 논리에도 증오와 거부를 계속할 것을 선언한다.
이러한 우리의 투쟁은 민족사의 전진적 승리를 쟁취하고 말 것임을 확신한다.
1964년 5월 20 일
한·일굴욕회담 반대 학생총연합회 선언문
5,16을 성토한다.
지금부터 3년 전 1961년 5월 16일 새벽 총성과 함께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일군의 청년장교들에게 장악되었다. 그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혁명’을 공문으로 시달하교 온갖 화려한 형용사로 된 혁명공약, 갖은 환상을 나열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비롯한 각종 계획을 발표하고 모든 사회정의와 민족정기를 혼자 독점하면서 ‘세대교체’, ‘체질개선’, ‘재건’, ‘인간개조’, ‘민족적 주체성’, ‘민족적 민주주의’ 등 온갖 고귀한 말을 남발하였다. 그리고는 군사혁명정부와 그의 정책에는 한마디의 비판도 용서하지 않는 철저한 장막을 쳤다. 그로부터 3년, 무비판의 뒷장막에서 온갖 화려한 계획과 공약 뒤에 도사리고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의 모골이 송연한 공포정치와 수도방위사령부 등의 총칼의 보호를 받으면서 너무나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역사적 퇴보’를 이 나라 민족사에 강요하였다. 수많은 아름다운 약속을 해온 3년, 5월 군사혁명 장교의 정부는 약속한 것 중의 어느 하나도 이룬 것이 없으며, 약속의 정반대의 것은 어느 것 하나 빼지 않고 너무나 엄청나게 저질러놓았다. 이제 그들의 놀라운 범죄사를 그들의 혁명공약 6개 항목에 따라 들추어보자.
1. “반공을 국시의 제 1의로 삼고 형식적이며 구호에만 그쳤던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반공의 미명을 빙자하여 1천여 명의 민족적 양심세력을 용공분자로 몰아 옥석의 구별도 주저 없이, 서대문 감옥으로 인도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이 사상적으로 의심받자 야당은 이승만식의 매카시적 수법을 쓴다고 통박하였던 그들이 어린 학생에게 불온삐라가 든 소포를 날려보내고 공산당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도 한마디 해명도 못하고 있다. 괴소포를 보낸 자는 누구이고, 이를 잡아내지 못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개, 누가 과연 ‘매카시’의 수제자이고 이승만식의 신경질적 관제날조적 반공을 정책의 상투수단으로 하고 있는가. 더욱이 그들은 반공의 최대 무기인 자유의 가치를 무시했으며 공산주의의 온상인 빈곤을 이 땅 곳곳에 확대해놓았다. 이것이 그들이 만든 반공태세의 재정비요 강화다!
2. “국제협약을 준수하고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의 유대를 강화한다." 그들은 이제 ‘적극외교’, ‘대국적’, ‘거시적’, ‘실리적’ 외교를 표방하면서 일본과의 찰떡같은 떼려야 펠 수 없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일본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을 일본의 쇠사슬에 꼭 묶으려는 한·일굴욕회담을 강행하고 있다.
3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참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하루아침에 고관대작·대기업의 사장이 된 청년장교들은 그들의 왕성한 정력에 비례히는 무한한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산같이 쌓인 ‘구악’ 위에 더욱 크고 더욱 악취나는 ‘신악’을 만들었다. 사직공원 불하를 비롯한 온갖 부정부패, 독직 사건을 보라! 또한 그들은 혁명동지간의 피나는 권력투쟁 끝에 혹은 서대문 감옥으로 혹은 외국으후 쫓겨났고, 그들의 사랑하는 꽃 ‘사쿠라’는 정치인, 학원, 이 민족 모두를 세대, 출신, 신과 구 등으로 분열시켜놓았다. 학원사찰과 분열공작은 가장 악랄한 예이며 워커힐은 국제적 퇴폐주의의 물질을 한강에 넘실거리게 하는 국민도의 민족정기 진작의 표본이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그들의 온갖 계획과 약속이 있은 지 3년, 물가는 70퍼센트가 올랐고 국민소득은 세계 최하위 40불이 되었다. 민생은 기아선상에서 부터 아사되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물가고, 실업, 기아임금을 농민·노동자·소시민에게 강요하면서 이들 전체 국민의 피눈물 위에 소수 반민족적 매판성 악덕재벌과 벼락감투의 배를 불렸다.
5. “국토통일을 완수할 실력을 배양한다." 그들이 배양한 실력은 기만과 부정과 부패의 천재적인 교활한 실력밖에 없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 이처럼 철저한 거짓말은 역사상 있은 적이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혁명공약을 성취할 이념도 능력도 없었으니 성취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며 전 국민의 비웃음 속에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 이 되었다. 1961년 5월 16일부터 8월 12 일, 1963 년 2월 18일, 2월 27일, 3월 16일, 4월 8 일 이른바 수많은 ‘번의’와 표변을 보라. 정치를 예술이라 하지만 이보다더한 콕예를 본 일이 있는가?
화폐개혁, 환율개정, 농촌고리채정리 등 졸렬무정견한 경제정책과 새나라, 빠쩡꼬, 오토바이, 교포재산반입, 증권파동 등 갖가지 부정사건으로 총파탄에 이르는 국민경제를 일본 제국주의자의 배설물로 주무르려 발악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의 더러운 배설물로 한국경제가 자립된다는 거짓말을 강변하고 있다 부패, 무능, 독성 부정 등 온갖 독소는 터질 때를 기다리며 화농해 있다.
반민족적 탄압, 기만, 부정 , 무능, 부패 정부에 양심적 국민은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
결의문
1. 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단하라!
1. 농민·노동자·소시민의 피눈물을 밟고 서서 홀로 살쩌만 가는 매판성 악덕재벌을 처형하고 몰수하라!
1. 5,16 이래의 온갖 부정, 부패사건을 자진 폭로하고 그 원흉을 조사 처형하라!
1. 학원사찰을 비롯한 온갖 민족분열공작을 자진폭로, 그 총지휘자를 처형하고 반공, 방첩에 전력을 경주하라!
1. 5월 군사정부는 5,16 이래의 부정, 부패, 독선, 무능, 극악의 경제난, 민족분열, 굴욕적 한·일회담 등 역사적 범죄를 자인하고 국민의 심판에 부쳐라!
1. 5,16 이래 구속된 정치범을 즉각 석방하라!
1. 우리들 민족적 양심의 학생과 국민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피의 투쟁을 계속하려 한다.
민족의 양심인 전국대학생, 그리고 애국시민이여, 온갖 화려한 약속 뒤에 도사리고 갖은 부패와 부정, 독선을 자행한 자는 누구인가!
단군 이래 최고의 물가고와 기아임금을 농민, 노동자, 소시민에게 강요하면서 소수의 매판성 악덕재벌을 살찌게 한 자는 누구인가!
총파탄에 이르는 국민경제를 일본 제국주의의 더러운 배설물로 얼버무려놓으려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피로써 되찾은 한국을 일본의존적 예속의 죄사슬에 묶는 것이 근대화요 자립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자----소위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사 지내자!
영원히 잠들게 하자!
1964년 5월 20 일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주의 장례식 조사
시체여! 너는 오래 전에 이미 죽었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넋없는 시체여!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여!
썩고 있던 네 주검의 악취는 ‘사쿠라’의 향기가 되어, 마침내는 우리들 학원의 잔잔한 후각이 가꾸고 사랑하는 늘푸른 수풀 속에 너와 일본의 2대 잡종, 이른바 사쿠라를 심어놓았다. 생전에도 죄가 많아 욕만 먹는 시체여! 지금도 풍겨온다. 강렬하게 냄새가 지금 이 순간에도 충혈된 사냥개들의 눈으로부터 우리를 엄습한다.
시체여! 죽어서까지도 개악과 조어와 전언과 번의와 난동과 불안과 탄압의 명수요 천재요 거장이었다. 너, 시체여! 너는 그리하여 일대의 천재(賤才)요 절대의 졸작이었다. 구악을 선악으로 개악하여 세대를 교체하고 골백번의 번의의 번의를 번의하여 권태감의 흥분으로 국민정서를 배신하고, 부정불하, 부정축재, 매판자본 육성으로 빠쩡꼬에 새나라에 최루탄 등등 주로 생활필수품만 수입하며 노동자의 언덕으로 알았던 ‘워커힐’에 퇴폐를 증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아 국민도의를 고취하고 경제를 재건한 철두철미 위대한 시체여! 해괴할손 민족적민주주의여!
너는 또한 뉴코리아의 무수한 유리창에서 체질마저 개악하였다. 어둡고 괴로웠던 3년 전 안개낀 어느 봄날 새벽, 네가 3천만 온 겨레에게 외치던 귀에도 쟁쟁한 그 역사적인 절규를 너는 벌써 잊었는개 절망과 기이전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던 공약 밑에 너는 그러나 맨 먼저 민족적 양심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그때 이미 우리는 알았다. 너 죽음의 저 야릇하게 피비린내 감도는 낌새를 우리는 보았다. 죽음으로 죽음으로만 향한 너의 절망적인 몸부림을. 우리는 들었다. 우리에게 정사를 강요하는 너의 맹목적이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목소리를, 그리고 우리는 맛보았다. 극한의 절망과 뼈를 깎는 기아의 서러움을. 시체여! 반민족적 비민주주의여! 석학의 머리로서도 천부의 의감으로서도 난해하기만 한 이즘이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절망과 기아로부터의 해방자로 자처하는 소위 혁명정부가 전면적인 절망과 영원한 기아 속으로 민족을 함몰시키기에 이르도록 한 너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느냐? 무엇이더란 말이내 말하지 않아도 좋다. 말 못하는 시체여! 길고 긴 독재자의 채찍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자신의 치명적인 상처를 스스로 때리고 넘어진 너, 누더기와 악취와 그 위에서만 피는 사쿠라의 산실인 너. 박의장의 이른바 민족적 민주주의여! 너의 본질은 곧 안개다!
어느 봄날 새벽의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너, 안개여, 너는 안개 속에서 살다가 안개 속에서 죽은, 우유부단과 정체불명과 조삼모사와 동서남북의 상징이요 혼합물질이었다 . 한없는 망설임과 번의, 종잡을 길 없는 막연한 정치이념, 끝없는혼란과 무질서와 굴욕적인 사대근성, 방향감각과 주체의식과 지도력의 상실, 이것이 곧 너의 전부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소위 혁명정선으로 이같이 허무맹랑한 이념의 몰골을 그대로 쳐들고서 공약을 한다. 재건을 한다.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 고리채 어쩌구, 5개년계획에 심지어 사상논쟁까지 벌이던 그 어마 어마한 배짱은 도시 어디서 빌려온 것일까? 그것은 ‘덴노헤이카에게 빌린 것이 분명하다. 일본군의 그 지긋지긋한 전통의 카리스마적 성격은 한국군 구조의 바닥에 아직도 허황한 권력에의 미망과 함께 문제의 그 배아를 길러낸 것이다.
시체여! 고향으로 돌아가라! 너는 이미 돌아갔어야만 했다. 죽어서라도 돌아가라, 시체여! 우리 3천만이 모두 너의 주검 위에 지금 수의를 덮어주고 있다. 들리느냐? 너의 명복을 비는 드높은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들이 이미 죽은 네 육신과 정신으로 결코 반공도 재건도 쇄신도 불가능하다는 저 민족의 함성이 들리지 않느냐? 저 통곡이 들리지 않느냐? 가거라! 말없이 조용히 떠나가거라! 그리하여 높은 산골짜기를 돌고 돌아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시체여! 하나의 어리디어린 생명을, 꽃분이, 순분이의 까칠까칠 야위고 노오량게 부어오른 그 얼굴을, 이들의 공납금을 마련키 위해 자동차에 뛰어드는 어떤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결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월 16일만의 민족적 민주주의여! 백의민족이 너에게 내리는 마지막의 이 새 하얀 수의를 감고 훌홀히 떠나가거라! 너의 고향 그곳으로 돌아가거라, 안개 속으로 가거라! 시체여! 돌아가거라! 이제 안개가 걷히면 맑고 찬란한 아침이 오리니 그때 너도 머언 하늘에서 북받쳐오르는 기쁨에 흐느끼리라. 일찍 죽어 복되었던 네 운명에 감사하리라!
그러나 시체여!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바로 지금 거기서 네 옆사람과 후딱 주고받은 그 입가의 웃음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대량검거의 군호인가? 최루탄 발사의 신호인가? 그러나 시체여!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목메이도록, 뜨거운 조국과 너의 최초의 악수인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죽은 이의 입술가에 변함없서리는 행복의 미소인 것을
시체여!
1964년 5월 20일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고려대학교 구국비상결의선언
민족의 5천 년 역사를 왜곡되게 하느냐 정의와 자유의 힘으로 3천만 민족의 운명을 봉건, 외압, 독재 신식민주의의 굴래로부터 벗어나게 하느냐 하는 국가초비상시 우리 전국청년학도는 다음과 같이 결의 선언한다.
1. 현 위정자는 5,16 이후 감행된 수많은 부정부패 행위를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 앞에 사죄하라.
1. 신성한 학원을 침입한 경찰은 즉각 파면하고 관계책임자를 즉시 엄단하라.
1. 새벽에 법원을 강간한 일부 무법 ‘테러’군인과 관계책임자를 즉시 엄단하라.
1. 구속중인 애국학생을 즉시 석방하라.
1. 파국에 직면한 민생고 타개는 망국 독점매판재벌의 엄단 몰수로부터 출발하라.
1. 정치자금을 양성화-o-}는 입법조치를 하라.
1. 위험천만한 비상시국을 조성하는 과장포고나 무근거한 과장선동을 지양하라.
1. 진정한 학생의 외침이 퇴폐타락한 구정객들이나 몰지각한 일부 정피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하며 여하한 이들의 편승도 규탄, 타도할 것이다.
행동강령
오늘 우리는 민족의 진보와 번영을 위한 혁명대열의 전위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전국학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행 동노선을 천명한다.
1. 오늘 우리의 총궐기는 백만 학도와 3천만 민족의 절실한 요구임을 확신한다.
1. 우리의 행동은 헌법수호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하에 무질서한 파괴활동 행위가 아님을 명시한다.
1. 오늘의 행동은 전국대학생의 공동의사와 공동행위의 결의임을 선포한다.
1. 오늘 우리의 행동에 편승하려는 여하한 당파도 이를 배제하고 규탄한다.
1. 금주 내에 우리의 의로운 주장이 관철될 획기적 전기가 이룩되지 않을 때는 4,19정신으로 실력투쟁도 불사할 것을 천명한다.
1964년 5월 21 일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선언문
4,19 정기가 조국사에 던진 민족적 희망이 확고한 민주지도체제를 구현치 못했다는 어쩔 수 없는 퇴영의 역사는 비합법적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탈취의 합리화를 결과했으며, 또다시 각성과 자체 성장을 망각한 오늘의 난국을 역산(逆産)하여 우리를 이 광장에 끌어냈다.
바야흐로 5,16쿠데타에서 ‘강요된 민족의 기대’마저 ‘ 강요된 복종’으로 추락하게 되었으며 4월의 정신은 유치한 기만과 간악한 조작 속에서 원점을 하회하게 되었으며 현 이 사회의 저류에는 이글거리는 위기의 지열이 극한계를 달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도 현존 한국의 제 정치세력들은 정권쟁취를 위해서 상호 테러에 혈안이 되어 있고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여하한 치사스런 결단도 불사하고 있다.
우리는 저들의 시대착오와 방향감각의 상실을 탓하기 전에 3·24궐기 이래 모든 방향에서의 투쟁을 한곳에 집중시켜 떳떳한 자세로 솔직한 우리의 주장을 선언하려 이 광장에 다시 섰다.
지난 2개월 간에 잔혹한 탄압과 무시를 딩하면서 좌시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우리는 숱한 주장과 경고를 계속해왔다. 리는 현 국정자나 일부 몰지각한 반민족적 경제인들로부터 민족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한 획기적 변환과 혁신을 갈망해 왔다. 허나 사태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배신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 기만과 허구만이 떠돌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끊임없이 주시해온 우리 대학의 지성은 문제의 핵심이 굴종과 체념의 토양에서 외세에 의한 국토양단의 쓰라린 민족사에 비롯되어, 계속 민족의 단결과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민주화로의 자체 능력을 스스로 마손시키
고 있음을 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의 정치권력과 무모한 투쟁을 능사로 하지 않는다.
허나, 보라!
오늘 우리의 현실은 엄숙한 민족의 대열에 가공할 기반을 씌우고 감연한 추진력의 원천마저 박살하여 문제의 핵심을 미망으로 이끌고 있지 않는가?
민족의 절규를 저버린 대일 굴욕외교, 독점자본의 무분별한 횡포! 법치주의를 전복하는 통치주의의 만행! 조국의 자유와 양심의 심장인 학원 내의 테러리즘!
이 모든 비민주적 현상들이 오늘의 위기를 도출하는 구체적 요소들이 아닌가? 정의에 철하고 진리에 명한 우리 대학의 지성은 오늘의 사악과 불의를 솔직히 파헤쳐 올바른 조국사의 진정한 길로 열고자 한다.
조국의 주인이 누구요 주권의 소재가 어디인데 민족의 절규와 감정을 외면한 채 민생고 해결에 완전 실패한 나머지, 고갈된 국가경제 긴급 미봉책으로 신제국주의를 자초판 반민족적 만행이 정치귀족의 탁상에서 계속 강행되고 있지 않는가?
여기 민족의 주장은 ‘민족적 민주주의’를 ‘민족 기만주의’로 착각하여 묵시적 위협과 과잉의욕만의 독재정치로 정권유지를 강행하려는 인상을 과감히 탈피함에 있다. 막연한 피해의식에서가 아닌 과학적 비판의식에서 비롯한 국민의 우려는 오늘의 화해된 경제질서 속에 저자세, 굴욕만의 결산으로 투입되는 일본 자본이 신제국주의의 시장화, 예속화의 결과를 초래한 점이다.
대중의 굶주림에 반비례하여 악질정치세력과 결탁한 독점자본가들은 계속 소비성향만을 병적으로 높여 중산층을 파멸로 이끌고 나약한 중소기업에 10여 년 간의 악랄한 테러를 감행해왔다.
더구나 부정부패 관료귀족들은 저들 악덕재벌들의 방패가 되어 이 사회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이끌고 있지 않는가? 여기에 우리는 현 시점의 마지막 정비단계에서 이들 ‘부정부패관료’들을 과감히 발본색출하여 엄단할 것을 천명하는 바이며 저들 파렴치한 독점자본을 즉시 해체히여 민생고 해결과 중산계급의 건전한 발전을 기할 것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오늘의 이 위기 앞에 하나 더 대공방위에 전력하여야 할 총검이 국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권을 위협하여 민주국가의 근기를 뒤흔들었다. 이 천인공노할 사 실 ‘총검은 합리화’된지라, 역사적 논리가 정립되더니 드디어는 ‘통치주의’의 신봉지들에 의하여 정의의 척도가 되는 총검이라는 의식이 이 땅에 만연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전 민족의 함성 속에 절규한다. 이들 u}국적 난동분자들을 즉시 처단할 것이며, 더이상 국민의 엄숙한 기본권이 유린되지 않도록 확고한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명확히 알고 있다. 위정지들을 규탄하는 행동이 민주사회의 특권이 아님을 허나, 허위의 기만에 의해 좌석을 차지한 정치세력은 오늘의 난국타개책으로 오히려 신성한 학원의 양심을 분열시키고 학원의 간판을 정쟁의 도구화, 정보정치의 대상화하여 드디어는 신성한 아카데미즘의 전당을 정치사찰의 마당화하지 않은가? 도시 대학의 솔직한 양심의 소리가 ‘역사상 졸렬한 회유와 협박’에 그쳐본 예가 있는가? 여기에 어두운 이면에서의 유치한 조작보다 획기적인 대학의 자유를 보장하고 밝은 광장에서 대학의 건전한 주장을 올바로 이해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이 모든 위기의 요소들이 일소될 것을 오랫동안 요구했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더이상 부정적 모든 현실이 이 시점을 기해 긍정적 발전으로 이행되지 않는 이상 조국과 민족은 영원한 비극을 자초하리라.
우리는 재차 확신한다. 일체의 독선과 방향감각의 상실을 탈피하여 우리의 모든 절규가 민족 대도의 획기적 정비를 강력히 요구함이며 현 체제의 재편성을 히여 마지막 시정을 총체적 집약적으로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지성임을 자부한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는 망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절규, 우리의 궐기는 엄연히 민족의 편에 서 있는 것이다.
1964년 5월 25 일
건국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전북대학교 서라벌예술대
경희대학교 중앙대학교 국학대학교 서강대학교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국제대학교 시립농대
동국대학교 동아대학교 단국대학교 서울여대
서울대학교 부산대학교 덕성여대 수도여사대
숙명여대 충남대학교 동덕대학교 숭실대학교
연세대학교 청주대학교 경기대학교 한국신학대
홍익대학교 가톨릭의대 외국어대
숭실대학교 6·1 선언문
부정과 부패와 독선과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참다운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창조한 4,19의 정기가 확고한 민주주의체제를 구현치 못함으로써 비합법적인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탈취를 합리화하는 결과를 냈으며,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건 군사정권은 민생고 해결에 완전히 실패한 나머지 고갈된 국가경제의 미봉책으로 민족감정을 도외시하고 저자세 굴욕외교로 우리의 해양 영토를 매각하고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신제국주의의 시장화 · 예속화의 위험을 자초하려 하고 있다.
한편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전례 없는 자살의 참상을 빚어내고 있는 이때에, 악질정치세력과 결탁한 독점자본가들은 반민족적·반국가적 착취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중산층을 파멸로 이끌고 나약한 중소기업에 악괄한 테러를 감행해왔다.
그리고 부패관료들은 저들 악질재벌들의 방패가 되어, 이 사회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어 현 사회의 위기는 극한점을 달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5천 년의 민족사를 왜목되게 방조하느냐 또는 자유와 정의의 전위대로서 3천만 민족의 운명을 개신광정하느냐 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4월의 젊은 사자들이 부정부패에 저항뼈 자유와 정의와 역사의 요구를 구현키 위히여 봉기했던 위대한 행진의 서콕에 뒤이어, 우리는 무지·무능·무책임·공포정치에 항거하고 꺾여지려는 4 월의 민주주의의 나무에 ‘피의 거름’을 주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보라, 현실의 가증할 사실들을!
민족의 절규를 저버린 대일굴욕외, 독점자본의 무분별한 횡포 법치주의를 전복하는 통치주의의 만행, 사회의 자유와 양심의 심장인 학원 내의 테러리즘! 이러한 모든 비민주적 반민족적 현상들이 오늘의 위기를 가져온 구체적인 요소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정권의 최고책임자가 “오늘날 정국의 불안은 근본적으로 일부 정치가들의 무궤도한 언동과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선동, 그리고 일부 학생들의 불법적 행동과 정부의 지나친 관용에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이 얼마나 파렴치한 책임전가인가?
우리는 명확히 알고 있다. 위정자에 대한 규탄행위가 민주사회 구현을 위해 능사가 아니란 것을! 그러나 기만적인 명분을 내세워 자리를 차지한 정치세력은 오늘의 난국타개책으로 오히려 신성한 학원의 양심을 분열시키고 아차데미즘의 전당을 정치사찰의 마당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대학의 양심의 고리가 역사상 졸렬한 회유와 협박으로 중단되어진 예가 있었던깨 우리는 어두운 이면의 유치한 조작보다 획기적인 대학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학의 건전한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모든 위기의 요소들이 해소되기를 오랫동안 갈구하여왔으며, 부정적인 모든 현실이 긍정적으로 발전되지 않으면, 조국과 민족 앞에 영원한 비극을 자초하리라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 정부가 독선과 방향감각의 상실을 탈피하려민족대로의 획기적 정비를 마련하고 현 체제의 과감한 재편성을 강력히 요구하며, 마지막으로 실정의 시정을 총체적 집약적으로 주장한다.
1964년 6월 1일
고려대학교 6·2 선언문
오늘 우리는 조국의 역사적 부름에 딩하여 여기 결의와 행동으후서 대정부투쟁을 선언는 바이다. 민족의 생활진로가 일보 밖의 지표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 이상 더 잔인하게 인간생활을 영위하여야 하기에는 우리들의 선조들은 너무나 슬퍼한다. 우리는 민족이 임종을 고하는 호곡을 듣고 있다. 독재와 전대미문의 가공할 부정, 부패, 불신, 악덕재벌의 횡포 이 모든 간사한 정치적 폐해는 행동의 전위에 선 우리들과 전 국민의 과업으로 요구되는 박정권타도의 이유이다. 이 나라의 민주정치와 장래를 위해서는 또다시 헌정을 역행하는 군인들의 불법쿠데타는 없어야 할 것이다. 민주선거로서 수립한 위장된 박정권의 제 3공화국을 헌법에 의한 4년 간의 법적 기간으로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 보다는우리 조국의 각박하고 비참한 현실이 우리를 피의 반항으로 이끈다. 우리는 현정권의 단말마적 만행과 처절한 집권욕을 좌시할 수 없으며 헌정을 배신하고 정권욕에 광분하는 박정희 이하 현 집권자들의 기적적인 집권을 묵시하기에는 너무도 조국의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
오늘 우리들의 이 역사적인 순수성을 기조로 한 이 대열에 어떠한 불순세력도 개재할 수 없으며 불행하게 된 몇몇 군인들의 전철을 답습하지 말고 대공전선의 강화를 이 시간 같이하여 더욱 공고히 하여줄 것을 바라는 바이다. 박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하여 가사지경에 접한 이 할퀴고 찢긴 맨발의 민족을 끌고 나갈 것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박정권은 최후의 양심을 발휘하여 과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쌓은 바 그 훌륭한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외상하여 솔직하고 양심적인 모범군인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애국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입기 위해 총을 훔쳐야 하는 이 처참한 사실에서 당신은 또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주관적인 당신의 애국심이 객관적인 밍국이 되었음을 당신은 솔직히 통탄하며 이 민족의 대광장에 나와 따뜻한 눈물로써 작별인사를 하기 바란다. 당신들의 민족주의는 이미 장례식으로 종언을 고했지만 이로 인한 민족분열의 책임을 당신 생전에 사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공동운명구조선에 탑승한 이 자유민주혁명의 대열에 당신의 형제들이 출전하였으니 차제에 깊은 감회와 아울러 찬사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전 국민들은, 우리의 대열에 적극 호응할 것이며 북쪽의 공산세력과 현해탄의 독사설의 전과범이 하루를 멀다 하고 일보일보 잠식하고 있으며 아국에 동고동락해온 미국이 또한 당신들의 심때 강도행위에 크게 노한 점, 아직도 가시지 않아 하루하루 이 민족에 대한 등한시를 노정함으로써 국제간의 고립을 크게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지도이데올로기를 가식적으로 표방했던 5,16군부쿠데타의 미로를 직시했다. 결국 그들의 무지와 무능은 고도의 자본주의 단계에선 일본의 악랄한 신제국주의 경제침략의 상품시장으로 이 땅을 선양하려 했다.
조국의 주체성을 그다지도 수호하려 했던 민족주의는 미국의 철저한 간섭으로 좌절을 거듭해야만 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민족주의를 이 유린된 폐허의 초토 위에 재생시킬 정권을 기대한다. 파쇼화를 향한 군부가 쿠데타로 교체되는 사회를 우리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주체성을 상실한 채 그 어떤 종주국에 의존하려는 임시변통의 구정치인의 비민족적 현장타개식의 신정부도 결사반대한다. 우리는 합헌적인 민주주의가 강인하게 주체성을 견지하며 현실적으로 민족을 아사의 경지에서 구출하는 위대한 비전을 갖는 정부를 갈망한다. 친진보반보수라는 문구가 반공법에 저촉되는 질식할 언어의 ‘타부’(Taboo)를 파괴하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현실적, 실리적 민주주의를 배양하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이승만 씨의 정치철학을 당신은 꽃다발을 보내고 받아 온 것입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박정권의 타도를 선언할 것을 전 국민과 아울러 결의하는 바이다.
격 문
내 친구, 내 하숙방 후배인 Y.T.P야 이 역사적인 요청에 반역하지 말고 따뜻한 자유의 품에 돌아와서 이 대열에 참가하라.
오늘의 이 행동은 민족광장에서 결의한다. 또다시 이 거리에 나서야 하는 자유민의 후예들은 전 민족의 염원이 무엇인가를 통감하고, 오늘의 이 대열에 참가한다. 독재, 정보 부패, 불신, 강압정치의 최후의 발악은 우리들을 또다시 거리로 끌어냈다. 박정권의 민족적 민주주의는 장례식으로 끝나고 박산군, 김완용도 매장식으로 끝났으니 실리 있고 융통성 있는 현실적 민주주의의 알찬 씨앗을 새로 뿌려야 할 때는 왔다.
우리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우리는 기아의 거리를 맨발로 투쟁할 것이다.
1. 주관적인 애국충성이 객관적인 망국행위임을 직시하고 박정권은 하야하라.
1. 민족분열 일삼는 독재정권 물러가라.
1. 배고파 못살겠다! 악덕재벌 잡아먹자.
1. 미국은 가변을 벗고 진정한 우호국임을 보여달라.
1964년 6월 2일
고려대학교 구국투쟁위원회
김중태·현승일·김도현의 내란죄 공소장(1964. 6. 16)
16일 계엄사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지난 3·24학생 ‘데모’ 이래 각종불법집회 시위를 주동한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 4년 김중태(金重泰, 23), 현승일(玄勝一., 21), 김도현(金道鉉, 21) 등 3명을 형법 37조(내란죄) 위반, 그리고 김중태를 지난 5월 21 일부터 지난 2일까지 자기 집(시내 후암동 27의 7)에 숨긴 한미화학공업주식회사 전무 손홍민(孫洪敏, 49) 씨를 형법 제 151조 1항(범인은닉죄) 위반으로 계엄군재에 구속기소했다.
공소장전문
피고인의 인적사항
(一) 본적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 827번지, 주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27의 7호
(1) 학생(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정치과 4년) 김중태(남, 23)
(二) 본적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60번지, 주거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469의 17호
(1) 학생(상동) 현승일(남, 21)
(三) 본적 경상북도 안동군 서후면 금계리 876번지, 주거 서울특별시 성북구수유동 391번지
(1) 학생(상동) 김도현(남. 21)
(四) 본적 서울특별시 중구 수하동 27의 2호, 주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27의 7호
(2) 회사원(한미화학공업주식회사 전무) 손홍민(남, 49)
죄 명
내란범인은닉
적용법규
형법 제 87조 제 151조 제 l 항
공소사실
피고인 김중태는 19세시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과에 진학하여 4학년에 재학중인 자로서 동교 민족주의비교연구회(이하 민비로 약칭) 위원장직에 임하는 자.
동 현승일은 18세시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과에 진학하여 4학년에 재학중인 자로서 민비의 김중태 후임회장 및 투위의 부위원장직에 재하는자.
동 김도현은 18세시 서울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정치과에 진학하여 4학년에 재학중인 자로서 민비의 회장 및 투위의 위원으로 재하는자.
동 손홍민은 경성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 및 무역업에 10여 년 간종사타가 현재 한미화학공업주식회사 전무직에 종사하는 자.
第一
피고인 김중태 동 현승일 동 김도현 등은 현 정치정세는 부정부패와 무능독선의 극에 달하였고 경제질서는 그 정책빈곤으로 파탄에 이르러 천정부지의 물가고로 민생고가 극심하여 민족분열의 위기에 놓여 있고 한·일회담은 매국적·굴욕적 회담으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화하는 일보전에 있다고 망상단정하고 현 사태는 정부전복의 요인이 됨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세칭 3·24, 제국주의자, 민족반역자화형집행식, 3·25, 3·26, 한·일회담성토대회 등 불법시위로 피고인 김중태가 구속되고 각 학교의 동조적 반응이 보이자 국민여론을 환기문란케 할 목적으로 시위를 계속할 것을 공모하고 동 현승일 동 김동현 등이 주동이 되어 세칭 4·17 한·일회담성토, 4,19영령추모식, 4·20, 4·21 반동시로 민심을 환란하고 반정부적 감정의 조장과 무정부적 무질서상태를 초래케 하여 극도의 정국불안을 조성하자 일부 국민이 호응한다는 착각하에 대안 없이 한·일회담 무조건반대를 표면상 구호로 기실 정부의 시책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번복할 것을 획책하고,
피고인 김중태 동 현승일은 1964년 5월 14일 오후 3시경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출입문으로부터 약 50미터 상거한 잔디밭에서 정권타도에 관한 모의를 한 후 시내 각 대학교와 연락을 취하여 동년 5월 16일 오후 7시경 동교월편 진아춘 중국요정 2층에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대표로 피고인, 김중태 동 현승일, 동 김도현 공소 외 송철원, 동 최혜성, 동 이원재 등이 참석하고 동국대학교 대표로 공소외 장장순, 동 박동인, 성균관대학교 대표로 공소외 박형길, 동 김광열 외 4명, 건국대학교 대표로 김영목, 동 백승홍, 서울사범대학 대표로 공소외 김길열 외 2명 등 21명이 참석 회동하여 피고인 김중태 사회하에 현정부 및 공화당이 주창하는 민족적 민주주의는 가식적 허구의 것으로 단정 , 이를 말살하는 것을 방치하는 소위 ‘황금식민족적 민주주의장례식’을 대규모적으로 거행히여 국민의 호응을 촉구, 결정적 거사를 합의하고 그 준비책으로 피고인 김도현은 선언문, 결의문, 한·일회담, 5,16성토문 등 작성을, 공소외 송철원은 조사, 민생고, 학원식제성토문안작성을, 동 장장순을 회식 진행총사회관에, 동 최혜성은 자금조달 유인물 인쇄를, 피고인 현승일은 공공관계 및 한양대학생 8천 명 동원을, 동 김중태는 연대 성대 동대 등 각교별로 최저 1천 명의 학생동원을, 공소 외 이원재는 서울대학교 학생동원을, 동 김용술은 모의 관, 두건· 죽장 구입 등의 각 책임을 분담하고 집행원으로 공소외 장장순은 사회를, 동 김광열은 민생고 성토문 낭독을, 동 송철원은 조사 낭독을, 동 경의대생 이재우는 5,16성토문 낭독을, 동 김영목은 한·일굴욕회담 성토문 낭독을, 동 정성철은 학원검찰성토문 낭독을, 각 분담하기로 합의결정한 다음 동일 오후 11시 30분경 철회하고 동년 5월 18일, 19일 양일간은 공소 외 성균관대학생 박형길가 및 시내 서초동 은진여관, 덕수궁 등지에서 준비상황과 문안을 검토하여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음을 확인하는 등 정부전복에 기한 최종적 모의를 한 후 피고인 등은 동년 5월 20일 오전 8시경 등교하여 유인물 1천 장씩을 각 대표에게 분배하고 담당학교학생 동원상황을 살핀 후 전제집행부책임자 등을 동교정에서 상봉하여 준비상황을 인계함과 동시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다짐하고 동년 오후 2시경 동교정에서 약 2천여 명의 학생이 운집한 가운데 민족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모의 관의 장례를 거행하고 공소외 동대생 박동인은 총파탄에 이르는 국민경제를 일본제국주의의 더러운 배설물로 얼버무려놓으려는 자 과연 누구냐? 피로써 되찾은 한국을 일본의존적 예속의 죄시슬에 묶은 것이 근대화요 자립이라고 거짓말하는 자, 소위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사지내자는 요지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동 건대생 민승은 “우리 민족적 양심의 학생과 국민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피의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는 결의문을, 동 김광열은 “5,16혁명공약은 공약화하고 정부는 부패무능독선부정의 독소가 터질 때를 기다리며 화징해 있다”는 요지의 5,16성토문 및 민생고성토문을, 동 송철원은 “민족적 민주주의를 지칭한 사체여 그대는 이미 죽었도다. 그대는 개악과 불의와 난동과 불안과 탄압의 명수요 천재다”라는 요지의 정부비방 조사를 각 낭독히여 운집한 군중을 선동, 정부 불신감과 정부타도의 동조적 감정에 몰입케 한 후 동 박동인 외 700여 명은 전시 모의 관을 선두로 동일 오후 3시경 교문을 출발하여 난동시위에 돌입, 북부세무서전 노상에 이르자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에게 다수의 위력을 과시하며, 일대 충돌을 야기하여 폭력투석을 자행함으로써 경찰관 수백 명에게 상해를 피상케 하고 동대문경찰서 백차유리전파 등 230여만 원 상당의 공공기물을 손상하고 이로 인하여 일부 학생이 연행구속되고 학생이 주동학생이 지명수배되자 일부 극렬분자인 공소 박삼옥 등 70여 명은 동년 5월 30일 오후 2시경 동교 4,19기념탑 앞에서 표면적으로 구속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기실 결정적 무정부 상태를 야기할 심산하에 단식농성시위에 돌입, 극한투쟁을 전개중 동년 6월 1일과 2일 도피중인 피고인 김도현, 동 김중태는 각 이에 가담하여 시위군중을 향히여 “우리는 서대문형무소로 가야하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같이 투쟁하지 못함을 크게 유감으혹 생각한다. 여러분들을 끝까지 극한투쟁하라, 때는 왔더”고 선동, 격려하여 이에 고무된 단식 ‘데모’대는 동년 6월 3 일 오후 6시경 공소외 송철원을 들것에 들고 담요를 뒤집어 씌우는 등 극히 선동적 양상으로 교문을 출발, 시위에 진입승배 타 대학과 합류하꼬} 종로 5가 화신 앞 경유 곳곳에 포위한 경찰저지선을 투석, 폭행으로 일거에 돌파, 일제히 중앙청으로 쇄도하여 세종로 경찰관파출소, 경찰무기고 등을 손상 점거 방화하고 군관민 차량을 탈취하는 등 흡사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하는 난동을 자행히여 약 450여만원 상당의 공공기물 및 건조물을 손상하고 경찰관 960여 명에게 상해를 피상케 하는등 폭동하고,
第二
피고인 손홍민은 상피고인 김중태가 전시 ‘3·24데모’ 이래 5·20 불법시위로 현상 지명수배중인 자임을 지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4년 5월 21일부터 동년 6월 2일 오후 5시경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27의 7호 피고인가 2층 북쪽 골방에 침식을 제공하는 등 은거시킴으로써 범인을 은닉한 것이다.
(「경향신문」, 1964년 6월 18 일)
6·3운동 관련 구속자 석방운동 결의문
여기 우리들은 6·3사태로 인하여 구속된 우리들의 동지를 구하고자 용감히 일어섰다.
학원이란 진리의 성정에서 우리들은 현실사태에 침여하게 된 것은 불행으로 생각한다
불행한 조국을 생각할 수 없었기에 학원이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집권자의 몰지각한 시대착오와 비애국적인 행동윤리를 방관하기 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지성이 되겠기에.
우리들은 용챔야 할 때 신중하다는 것을 증오한다. 분노가 과격했다 해서 폭압으로서만 다스려져서는 안되며 신의를 위하여 싸우는 데 온건한 것만을 미덕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선배가 남긴 4,19혁명이라는 역사의 기록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터전을 바로잡고 짓날웹가는 자유를 되찾게 했다는 증언을 상기할 때 4,19 혁명의 정신은 지금 우리들이 산교훈으로서 물려받은 조국수호의 심벌이 되는 것이며 또 다음 우리들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정신적 유산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불의와 부정을 보고 노하게 되는 것이며 조국의 앞날에 불행의 씨를 뿌리는 어떠한 권력에도 죽음의 항거를 주저치 않는 것이다.
6·3사태는 바로 이상과 같은 정신에서 조국의 내일에 굴욕적 외교사로 장식시켜서는 아니되겠다는 사회정의의 심정에서 학원의 문을 박차고 불합리한 현실에 도전한것이다.
다시 다짐하노니 우리는 권력의 욕심도 없고 어떠한 물질적 보상도 원치 않는다. 오직 조국의 내일을 위하여 힘차게 싸우는 학도들이며 사회악에 물들지 않는 것을 자부할 수 있는 순결한 지성인인 것이다.
사리와 사욕이 없는 자에게 대의와 공정이 지나쳤다는 비난이 성립될 수 없다고 단정하며 우리들의 정신을 죽이지 못하는 한 육신의 구속을 두려워하지는않을 것이다.
공부를 같이하는 학우들은 학업을 계속하는데 애국충정의 발로로 거리에 뛰어나왔다 해서 그 무더운 삼복더위를 지났건만 언제나 돌아올는지 모르는 옥중 동지들을 생각할 때 용솟음치는 분통을 금할 길 없어 옥고를 같이한 출옥동지(시민, 학생, 언론인, 정치인)들이 전위가 되어 옥중동지의 구출을 위하여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맹세한다.
이 운동은 권력인에 대한 반성과 젊은 세대에 대한 관용을 지망하면서 우리들의 목적과 취지가 관철될 때까지 피의 투쟁전개할 것을 만천하에 선언한다.
서기 1964년 9월 일
김덕룡{서울대) 김동영(민정당)
김홍식(고대) 노수길(단대)
민승(건대) 박동인(동국대)
박의정(국민의당) 서헌무{한양대)
오성섭(성대) 윤상철(「경 향신문」 )
이건우(4,19백상동지회) 이복재(민주당)
이종관(경희대) 이종률(「동아일보」 )
이춘우(자민당) 조가행(일반시민)
최창봉{동아방송) 하은철(4,19동지회)
(가나다순)
숭실대학교 4,19 추도사
조국의 영광된 장래를 위해 소아(小我)를 죽이고 대애大해에 사는 4,19 애국 영령들이여!
그대들의 위대한 발걸음은 부정과 부패와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렸고 그대들의 붉은 피는 시들어가던 이 땅의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피의 거름’이 되었으니그대들의 숭고한 정신은 영원토록 역사와 함께 하리라.
그대들의 정의를 위한 불굴의 투쟁과 자유수호를 위한 죽음의 항쟁은 진리추구를 사명으로 삼는 우리 학도들의 참다운 지표가 되고 있으며 조국의 민족운동사상 찬란한 일장을 이룩하였도다.
오호라! 그러나 그대들의 불후의 성업(聖業)에도 아랑곳없이 비참한 사례가 번지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그대들의 붉은 피로 씻겨진 이 땅엔 다시 부정과 부패와 독선의 신악이 자리잡고 그대들이 누비고 다니던 거리와 피를 토하고 쓰려졌던 광장엔 또다시 그대들의 후배들이 쓰러지고 있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40여 년 간 조국을 짓밟고 이 땅을 찢어발긴 일본 제국주의지들은 우리가 반신불구의 폼으로서 자유를 위한 사투를 전개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경제적 희생과 피의 소산으로 이룩한 부력을 배경으로 하여 다시 이 땅을 넘겨다보고 있음을 생각할 때 비분강개함을 금할 수 있겠는가?
‘영광의 제국주의자’ 시이나, “20년만 한국을 더 지배했으면 좋았겠다”는 다카스키, “평화선 철폐를 전제해야만 국교재개가 가능하다”는 사토 등, 일본 신침략주의지들의 농간에 휘말려 배고픔을 참지 못해 팔죽 한 그릇에 ‘장자 상속권’을 파는 식의 평회선 처리, 무상공여, 유상공여 등 떳떳치 못한 구걸식의 청구권 처결, 무시된 한국 문화재 반환, 평화선의 불법 침입으로 나포된 일본어선 반환과 대일선박청구권 상쇄, 일제시의 창씨까지 소개하며 주한 일본상사의 앞잡이로 꼬리치고 다니는 한심한 기업인들, 정식 조인이 되기도 전에 까마귀처럼 몰려와 바닷속을 이잡듯 옳어가는 일본어선에 쫓겨 연해안에서 골육상쟁하는 한국어업 실태, 이 비참한 현실을 어찌 좌시할 수 있겠는7}?
정의와 자유의 지표이며, 조국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4,19 애국 영령들이여!
그대들이 창조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는 영속할 것이며 그대들의 위대한 업적은 청사에 길이 빛나리라.
지금 우리 7백 숭실의 건아들은 그대들을 숭모하며 엄숙한 마음으로 기원하노니 애국 영령들이며 영원한 축복의 세계에 고이 잠드소서 .
1965년 4월 19일
고 김중배 군의 사망사건에 관한 동국대학교 교수단 성명서
우리 동국대학교 교수 일동은 지난 4월 17일 교수회를 개최하고 본교 학생 고 김중배 군이 사망한 진상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본교 교수로서 조사위원회를구성했다.
그동안 자주적인 입장에서 독자적으로 조사를 거듭해온 동 조사위원회가 본교 학생회의에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고 김중배 군이 4월 13일의 본교 학생데모에서 경찰봉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어져 있다.
이 사실은 신문에 보도된 검찰의 수사와 일치된다. 고 김중배 군의 이와 같은 불행하고도 원통한 사망에 관하여 우리 교수단은 다음과 같은 결의를 했음을 이에 성명한다.
결 의
l. 우리 교수 일동은 학부형으로부터 위탁받은 귀중한 자녀를 이와 같은 비참한 사고의 희생이 되게 한 데 대히여 애 절한 슬픔과 함께 스승으로서의 부덕한 책임을 통감해 마지않는다. 우리 교수 일동은 앞으로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 우리 교수 일동은 고 김중배 군의 사망진상이 명백해진 지 금 그 범인색출에 당국의 신속하고도 철저한 활동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이와 아울러 이러한 격분할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의 적절한 보장이 있기를 요망해 마지않는다.
서기 1965년 4월 22 일
동국대학교교수단 일동
연세대학교 단식투쟁위원회 성명서
정부가 국민의 피끓는 여론을 외면한 채 조인에서 비준으로 강행하려는 매국적 행위에 광분하는 차제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성명하는 바입니다.
첫째, 우리의 투쟁을 더욱 국민간에 승화시키고 민족 주체를 확립하는 정신적 기반을 정립하기 위하여,
둘째, 강의가 불가능하다고 조기방학과 조기시험을 날조뼈 대학사회를 균열시키고 대학의 양심을 저버리는 대학행정인의 파렴치를 방지하기 위하여,
셋째, 대학을 탄압하는 정권의 농간으로 교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의 수호와 구국의 최후 보루인 지성의 집결체인 대학의 존엄성이 우매한 권력의 탄압하에 비토되는 이 위기에, 대학의 권위와 멸렬되는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대학인의 사명과,
넷째, 국운을 우려하는 국민의 의무를 병행하기 위하여,
다섯째, 국난에 대한 국회의 권능과 책임을 통감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섯째, 항구적이고 강력한 투쟁의 공고한 기반을 정립하기 위하여,
이제부터 단식장에 흩어진 거적을 거두고, 우리의 옷깃을 여미어 우리의 결행을 다음의 충정문에 천명하는 바입니다
결코 우리의 목적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이 불신하는 집권층을 각성시키어 국민의 원하는 바를 존중하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재삼 결의하는 바입니다.
결의문
갈가리 찢겨 죽어만 기는 우리 동포에게 우리 학생들이 이제 또다시 한 번 줄 것은 오직 힘찬 결의와 과감한 행동이다. 우리에게는 3·1 정신을 이어받은 4·19의 젊은 혼이 알알이 살아 있다. 총칼의 울타리 속에 동포를 몰아넣은 현 정부는 또 부족하여 36년의 굴욕적인 소와 말의 생활에서 흘린 애국 선혈, 3천만의 선혈과 통곡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만신창이 된 이 나라 이 민족을 이제 또다시 누구에게 넘기려는가? 굴욕과 반예속의 역사를 또 한 번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현 한·일회담의 조기타결이나 우리 X댄의 힘을 보여주지 않는 애국적 회담을 결사 반대한다.
이에 우리 연세 5천 건아는 감연히 학장을 터져나와 전 민족에게 우리의 힘찬 결의를 엄숙히 고한다.
결의사항
1. 국민의사 무시한 매국적인 한 · 일회담이 중단될 때까지 우리는 투쟁을 계속한다.
2. 3천만의 생명선인 평화션을 일보도 양보할 수 없다.
3. 악덕재벌을 타도하고 민족자본을 육성하라.
4. 양식인의 의사를 비인도적인 무력으로 짓밟지 말라.
5. 감금된 궐기학생을 즉시 석방하라.
6. 4,19정신에 위배되는 모든 정치적 망동을 삼가라.
1965년 6월
연세대학교 학생 일동
‘한· 일협정비준반대 각대학연합체’(한비연) 결성 공동선언문
정부는 민족을 파멸과 예속에의 길로 몰고 갈 매국적 한·일협정에 기어이 도장을 찍고 51회 임시국회에서 공화당 거수기를 동원하여 그 비준동의안의 통과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한 번도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한 일은 없다 참된 이웃으로의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길 원하기 때문에 호혜평등의 전제적 대원칙이 무시된 협정을 극력 반대해온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열화와 같은 반대를 폭력으로 탄압하고 일방적 기만선전으로 국민을 우롱하여 정부는 이제 다시 또 민족의 전위세력인 학도들의 반대의사를 분산봉쇄하기 위하여 조기방학을 단행함으로써 우리의 정당한 수업의 권리를 박탈하며, 애국학도들의 마땅한 사회침여권을 짓밟아 젊은이의 정의감을 유린하고 있다.
그러나 반외세·반독재의 빛나는 투쟁을 담당해온 우리는 이 이상 욕된 역사의 연장을 방관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그 어떤 간고한 수법, 극악한 탄압도 이를 분쇄하면서 매국협정의 비준을 저지하려 한다. 이제 우리 각 대학은 다시 용기를 정비하고 조직을 연결하여 공동 투쟁전선으로 보조를 같이 함으로써 강력하고 보다 슬기로운 민족적 위기극복을 위한 학생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정치방학이라는 잔인한 여건에 구애됨이 없이 혹은 각 대학별로, 혹은 공동으로 투쟁할 것이며, 제 1차 공동궐기대회를 오는 15일 오전 11시 대성빌딩 강당에서 개최한다. 전 학우는 물론, 전 국민의 열렬한 지원이 있을 줄 믿는다.
1965년 7월 13 일
한비연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동국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비연 ‘한 · 일협정비준반대궐기대회’ 결의문
현 정부는 매국적 한·일회담을 한사코 반대 규탄하는 국민 여론을 폭력으로 억압하고 일방적 선전으로 민중을 기만 우롱하면서 지난 6월 29일 기어이 한·일협정을 정식 조인하고 금차 51 회 임시국회에서 그 비준동의안의 통과를 강행할 만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우리 전국 학도들은 작년 3·24 이래 김·오히라 메모를 골자로 하는 현행 한 일회담이 굴욕적이고 매국적임을 엄중히 항의하고 이의 즉시 중지, 백지 환원을 수차 촉구하여왔다.
우리들은 일본의 조국 강점과 식민지 통치를 합법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장구한 역사적 연유와 확고한 국제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평회전을 포기하며, 반세기에 걸친 민족의 착취 살상의 혈채(血價)를 경제협력 3 억 불로 구걸하는 현행 한·일회담을 결단코 민족의 이름드로 용납할 수 없음을 명백히 지적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20년에 걸친 미국원조의 기형적 경제구조하에서 부패 정치세력과 부정관료 지본이 결탁 · 정치자금과 특혜의 악순환으로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며, 민족지본의 육성을 저해하고 있는 현 상태하에서 예상되는 바, 일본자본과 상품의 대거 입국은 한국경제의 파탄만이 아닌 일본에의 예속을 초래할 것은 명약관화하며, 이는 민족의 염원인 진정한 자주자립국에의 길을 영영 봉쇄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강조하였다.
우리들의 이같은 이유에 근거한 한·일회담 반대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무차별 구타, 구금, 퇴정학 등으로 많은 학우들이 회생을 강요딩하였고, 학원 내의 사찰, 매수, 분열공작으로 학원은 더럽혀졌다. 이로써도 우리의 정의로운 투쟁을 꺾을 수 없자 당국은 계엄령, 휴교령, 조기방학 등을 번갈아 실시하면서 학생을 분산시킴으로써, 민족 양심의 전위대인 학도들의 슬기롭고 용맹스런 학생운동을 분산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 욕된 역사의 제물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한 우리들은 그 어떤 간교한 기만과 포악한 탄압에도 굴할 수 없으며, 기어이 이 매국회담을 분쇄하고 말 것이다.
우리들은 전 국민이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더욱 분발하교 더욱 궐기하여 내 나라, 내 민족을 지키는 운동에 과감히 침여 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들의 당면한 행동 방침을 다음과 같이한다.
1. 지금 진행되고 있는 비준반대 서명운동에 적극 침여한다.
2. 매국회담의 공범자로 휩쓸려 들어가려는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형제의 정으로 민족양심에 호소하고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3.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하여 일제 상품 및 외래 사치품 불매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한다.
4. 우리는 왜색배격운동을 범국민적으로 벌인다.
5. 만일 이상의 우리들의 의사가 무시될 경우 불행한 사태가 도래할 것임을 경각시킨다.
1965년 7월 15 일
한비연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한비연 ‘매국국회해산촉구결의대회’ 결의문
우리 민족의 피맺힌 원수 일본에게 조국을 다시 팔아먹는 을사매국조약이 비준 일보 전에 놓여 있다. 조국광복을 위해 숨져간 선열의 피 아직 뜨겁고 매국역적에의 저주 아직 치떨리는데 이 무슨 매국행위이냐?
이제 우리는 순국선열의 피 어린 절규와 전 민족의 분노하는 함성을 모아 신을사 역적 공화당과 야당 변절자에게 던진다
민족의 손마다 쥐어진 이 분노의 불길은 매국역적 그대들이 매국협정에 비준 도장을 찍는 날 그대들의 가슴 위에서 폭발하리라.
정부여! 국회여! 민족양심을 되찾고 매국조약을 폐기시켜라.
오늘 우리의 행위는 결코 어떠한 질서의 파괴나 기물의 파괴도 뜻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다만 민족의 함성을 전달하려는 우리의 단호한 결심을 만 천하에 공포함에 그칠 뿐이다. 민족양심이 완전 소멸하지 않는 한 우리는 민주 대한의 일본의 침략 없는 완전독립을 위해 톰과 마음을 바친다.
1965년 8월 12일
한비연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동국대학교
연세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대학교
서울법대 한 · 일협정 비준안 일당국회통과무효 선언문
1965년 8월 14일
반민족적 독재집단이 네오 제국주의의 검은 마수와 악수한 매국협정이 세계민주헌정사상 유례없는 일당국회하에서 통과되던 제 2의 국치일이다.
작년 3·24 이래 민족의 전 지성은 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굴욕적이며 조인내용이 매국적이매 공분으로 매도해왔지만 그들은 폭력으로 억압만을 능사로 삼으면서 급기야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제도의 기초를 흔들면서까지 통과를 강행했다.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을 위주로 한 민주주의이며 또한 그것은 우리의 건국 이념이기도 하다. 우 리는 건국 이래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피와 땀을 바쳤으며 선혈을 뿌려왔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핵심인 의회제도는 복수정당이 타협과 토론에 의해 공동의 광장을 구축하는 데 있을진대, 야당의 총사퇴 속에서 일당만으로 통과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의회제도를 사살(死殺)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인한 일당국회하에서 통과된 매국협정은 무효이며 이 매국협 정 통과에 조력한 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자다. 재천명하거니와 대한민국의 국시인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일당국회하에서 통과된 매국협정은은 원칙적으로 무효이다.
비준안통과 무효선언에 임히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며 요구한다.
l. 국시를 부인하는 일당국회에서 통과된 매국협정을 박살하기 위해 투쟁을 전개하겠다.
2. 일당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국민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 새 국회를 소집하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라.
3. 현 정권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헌정 위기사태 를 유발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 이 매국협정을 철폐하라.
4. 앞으로 매국문서의 무효화 및 폐기를 위해 투쟁하는 각 대학연합체와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며 개학과 동시에 강력한 실 력행사를 감행코자 한다.
이 긴박한 시점에서 우리 서울법대 학생들은 앞으로의 구체적이며 효과적인 투쟁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긴급학생총회를 8월 18일 오전 10시에 학교에서 개최한다.
1965년 8월 17일
이화여자대학교 항의문
미 『워싱턴 데일리 뉴스』 편집국장 귀하
우리 한국 대학생들은 24일 외신을 통해 들어온 귀지의 사설논평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음과 아울러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발견하고 실로 경악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귀지가 어떠한 정치적인 배경과 어떠한 단언할 만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그러한 소식을 얻었는지 우리들은 그 경로에 해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귀지가 추측한 대로 데모를 한 한국학생들이 거의 20세 전후의 일본의 ‘전제통치하’를 겪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부 야당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는 귀지의 천진하리만큼 단순하고도 횡포한 주장에는 정말 아연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5월 초 귀국의 워싱턴 지성들이 월남정책을 둘러싸고 밤새운 입의 공방전, 마라톤 토론 대회도 공산통치를 전혀 받아본 일이 없는 미국학생 및 교수들이 야당인 공화당의 사주에 의한 것 입니까?
그리고 또 전혀 공산치하를 모르는 존슨 대통령 및 민주당행정부의 월남 지지 태도는 누구의 조종이 라고 논평하시겠습니까?
둘째로 귀지는 일부 학생이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유익한 바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반대데모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했습니다만 우리들은 한 일간의 국교정상화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어떤 ‘조건과 자세’ 로 구원(舊怨)을 삭이면서 새로운 호혜평등의 선린관계를 회복하느냐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일제 36년이란 지난날, 허다한 고난 속에서 우리들의 언어와 생활을 고수할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이 송두리째 존재를 말살당한 기막힌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이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편과 같이 골수에 박힌 이민족의 언어개 노래개 사고방식이 우리를 괴롭히고 그들이 남긴 관료·교육제도 및 그들의 우민정치 및 식민지문화가 아직도 우리들의 근대화를 저해하고 있음을 우리는 매일처럼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도 전후의 격변은 한· 일간의 국교정상화문제가 한국민의 당위요, 일본국민의 당위요, 또한 귀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원망으로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당위를 위해 과거의 역사가 송두리째 무효될 수 있습니까? 또 설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정세의 추세가 세부득이 하다고 졸속을 거듭하여 조상이 범한 치욕의 유산을 불살라버리기는커녕 형태를 달리한 일본의 신식민주의의 간계를 간파하고도 가만히 먹혀야만 합니까?
이러한 약육강식이 세계의 대세라면 오늘날 귀국이 자유수호를 위해 뿌리는 몇 백만의 외원(外援) 및 인적 손실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겠습니까?
이 데모에 의한 항거를 정권투쟁과 혼선된 일부 야당이 이용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학생들은 항상 지주적으로 사고하는 행동인의 자세를 지켜왔고, 그러기에 일부 야당들의 아전인수에도 공격의 화살을 뽑아왔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일부 야당의 이용물이 되고 있음이 명백하다”는 귀지 사설은 실로 유감스러운 논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학생들의 동태를 계속 억제하기를 바란다는 귀지의 주장에는 자유민주의의 기수로 알려진 귀국에서 어떻게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는지 전율조차 느껍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어디서나 토론의 광장이 필요한 것이며 이것도 국가이익을 위한 하나의 행동일진대 좀더 설득과 이해의 광장을 장려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설마 월남정책에 반대하는 귀국 대학생 및 교수들에게 또는 흑백분리를 끈기있게 주장하는 남부 대학생 등에게도 정부의견을 따를 때까지 귀국의 민주경찰이 폭력을 쓰라고 귀지는 감히 주장하십니까?
우리는 덮어놓고 귀지가 우리 한국의 입장에 동의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1905년 귀국의 육군장관 태프트와 일수상 가즈라 다로(桂太朗)사이에 한국을 이권으로 한 묵계와 역시 같은해 포츠머스조약을 귀국이 주선하므로 한국을 일본이 통치하도록 묵인했던 그러한 역사의 오점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다만 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대학생들은 귀지의 횡포한 논평에 엄중히 항의하는 바이며 이에 대한 성의 있는 해명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1965년 6월 28 일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일동
기독교 목사 교역자 성명서
1.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조국의 운명에 대하여 방관할 수 없다.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로서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경영을 선포하며 국가와 사회의 현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단하며 역사건설의 엄숙한 책임을 지는 종교다. 기독교는 구약시대로부터 오늘에 아르까지 역사의 중대사건에 부딪힐 때 마다 방관, 침묵, 냉소의 태도를 거부하고 예언자, 지자{智者), 사도 목자, 봉사자들의 결연한 행동을 통하여 역사에 적극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한·일 국교재개와 같은 한국사상 중대한 사건에 있어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양심에서 나는 소신을 중외에 전달하는 것은 민주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임과 동시에 하나의 엄숙한 종교적 의무인 것이다.
2. 우리 그리스도인은 개인으로나 국가로나 진정한 화해의 정신으로 공동의 선을 추구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일 양국이 이 정신으로 국교를 재건 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를 위하여는 전비(前非)를 회오함과 동시에 새 역사건설을 위한 선의의 봉사와 협력이 약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한 · 일관계에서는 일본이 자국중심적 이권체제수립에 혈안이 되어 매수외교를 자행하므로 생긴 한국민의 의구와 반발 때문에 양국간의 적의를 더욱 격화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일간 체결되는 조약과 제 협정의 시비는 이미 사계의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토하고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상론하지 않으나 다음의 몇 요목을 들어 우리의 견해를 피력한다.
① 한국어민의 전통적 어장인 평화선구역을 λ}실상 포기함으로써 우리 어민의 생존권에 위협을 가져옴과 동시에 국민의 정의감에 좌절을 초래하게 된 것.
② 청구권을 무상공여로 변질시키는 데 동의함으로써 일본의 침략정신을 인정한 것.
③ 한·일간 제 조약무효화 시점을 애매하게 하므로 일본으로 하여금 을사, 경무 등 국권강탈행위를 합법화할 구실을 갖게 하여 항일선열들의 정신적 유산에 오손을 가져온 것 등은 국민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④ 뿐만 아니라 국내적 X까정비 없이 국제지본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한국의 항구적인 신식민지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경향도 국민사기를 말할 수 없이 저상(沮喪)시키고 있다.
⑤ 상대국에 비하여 경제 및 문화적으로 약세인 경우에 그와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사기의 고무와 그 정기의 함양에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일반국민에 대한 압력, 학생에 대한 비인도적인 강압 등은 국민의 자유로운 정신을 적극 저샌펴喪)시키고 있다.
⑥ 관계 및 사회의 일반적인 부정부패는 한 · 일 국교재개 이후의 행정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항의하는 민의를 권력으로 억압하고 조인을 단행하였으며 국회는 여의 다수를 무기로 삼아 그 비준을 강행하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로는 정부 대 국민의 갈등이 격화되고 한·일 양국의 적의는 우칩(尤甚)하게 될 것이 명백하며 국민의 정신력은 더욱 저하되어 내향적, 이중 인격적, 자기방어적 자학 또는 아부로 후퇴 굴종 및 예속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
3.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책을 절감함과 동시에 정부, 국회, 국민에 대하여 아래의 몇 가지를 호소한다.
@ 정부는 한·일협정에 관한 애국적 국민의 의사표시를 권력으로 탄압하는 행위를 즉시 중지하기를 촉구한다.
@ 정부는 한·일협정에서 국민여론에 순응할 자세를 갖추기 바란다.
@ 국회는 여·야 함께 정당보다도 한국역사의 장래를 위하는 의미에서 민족정기의 앙양을 중시하여 굴욕적인 한·일협정의 비준을 거부하기를 바란다.
@ 정부는 차제에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국민의 신망을 얻을 수 있는 국내정치의 쇄신을 기약하기 바란다.
@ 국민은 굴욕을 감수하는 노예성을 일축하고 일치단결하여 독립국가의 주권자로서의 위신을 견지하며 한·일간의 굴욕적인 조약을 폐기하고 진정한 상호이해와 성실한 공동사회건설을 약속하는 한·일화해의 달성을 위히여 노력하기를 바란다.
4. 우리 그리스도인은 온갖 형태의 독재와 모든 불의, 부정부패에 항거한다. 우리는 경제문화, 도덕, 정치 등 온갖 부문에서 성령의 인도와 기도와 봉사로 조국의 역사건설에 공헌하기를 기약한다.
1965년 7월 1일
기독교목사교역자연서(連書)
한경직 김재준 이태준 김세진 이해영 강신명 강원룡 명신익 박창번 권연호 김윤수
김창근 문이호 한명우 지원용 최혁주 정용철 백이언 전경연 위두찬 노홍섭 최영환
박형순 박형규 이태양 김종섭 석윤경 박창환 조문경 이기덕 문용오 이주식 박명원
이기홍 정보경 현순호 조규향 한장형 김도명 박치순 임택진 임인식 노기원 유운필
최복장 윤반태 황용만 전학석 김용수 전재성 박승은 이춘업 방 원 이운집 조동진
조광원 임헌창 이종무 전군명 홍동근 김원규 조서걸 이현규 강동수 이영헌 김성칠
한철수 김무봉 김용진 김광석 이봉걸 계창주 이선영 이승하 이건영 서병호 함석헌
윤응오 백한걸 허 환 유상봉 정인영 김세훈 이배형 지관순 오신주 지종호 김석순
고우접 박정식 장균자 김의화 김성억 김 구 오은철 전풍운 이영희 이창섭 홍성은
최기석 김재호 김선환 이흥룡 최기섭 김동우 김홍준 안세민 이응선 홍국진 강장암
김성주 박윤영 오병수 강도순 오요한 김덕순 김영수 한승직 김순권 김길성 유봉렬
김흥택 정운상 황종식 변동일 박선택 길영찬 황봉찬 이신욱 김수진 이태용 김성준
한영선 성갑식 박상증 김관호 노충업 원석기 이형석 이대근 이치복 이응화 조영택
김원희 이권찬 문 재 한기춘 김승호 박봉옥 최기석 최중해 최근무 김현구 강주원
정영수 윤복현 안종복 문준식 송두규 이회열 강용서 문상희 오창근 박칭균 강원하
김윤옥 (도착순)
재경문학인 성명서
1. 우리는 한·일국교의 정상화문제가 현실적 요청임을 인정하는 까닭에 과거 60년 간의 잊을 수 없는 가지가지 구원을 억제하고 정부의 지금까지의 회담추진을 주시하며 은인자중해왔다. 그러나 오늘 국민의 여론이 한·일 국교정상화의 원칙을 지지한다 하여도 그것은 어떠한 굴욕적인 조건을 무릅쓰고라도 조기 타결을 강행해야 한다는 정부의 졸속한 정책을 그대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일 국교정상화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호혜평등의 기초 위에 세워야 하고 그 호혜평등의 기초는 1910년의 합병조약을 포함한 한·일간의 모든 불평등 강제조약의 본원적인 부인과 무효화를 전제로 해야 하고 일본의 한국에 대한 과거의 모든 속죄를 구체적으로 제시실천하는 것을 선결조건으로 하는 한국우위의 원칙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지난 22일 국민 절대다수의 팽배한 반대의 여론과 의사를 강견무시하고 전격적으로 조인된 한·일조약의 양측 발표의 조문을 비교검토해 보건데 우리는 견딜 수 없는 민족적 의분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일본측의 악랄한 저의와 세밀한 계산 아래 기초된 조문을 거의 무수정으로 받아들인 감이 있을 정도로 기본조약에 있어서나, 청구권문제에 있어서나, 어업협정이나, 교포의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일본측 일방에만 유리하도록 되어 있고 또 유리하게 해석되도록 어구상의 허점과 독소를 지니고 있음은 전문가 아닌 법안(凡眼)으로도 역력히 알 수 있게 되었다.
3. 이와 같이 금번의 한· 일조약은 우리 국민 전체의 민족적 자존과 현실적 이해와 미래의 전망에 경제·문화·정치적으로 한결같이 굴욕과 재침해와 실질적인 예속을 결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정기와 민족의 양심으로 이 언어도단의 한·일조약의 즉각 파기를 엄숙히 요청하고 국회는 전체 국민과 더불어 이의 비준을 완전거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4. 우리는 이러한 굴욕적 조약을, 학생을 비롯한 전체 국민의 여론을 강압봉쇄하고 강행하려는 정부가 양언(揚言)하는 바 주체의식만 확고하면 된다는 언사를 규탄한다. 정부 당국이 먼저 주체의식을 망각한 태도를 맹성하기를 촉구하며 자기들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간계를 통렬히 반박한다.
우리는 정부가 이 이상 더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의 자유를 탄압억제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한·일조약에 대한 데모로 인해 구속된 애국학생들을 즉시 석방하기를 요청한다.
5. 우리는 조국의 비운과 민족의 불행을 초래하는 이 매국, 망국적인 악조약의 완전파기를 위히여 전체 국민의 단결과 궐기를 호소하며, 역사의 대도와 민족의 정론에 입각하여 민족의 자주자존과 국가의 영속한 주권과 권익의 옹호를 위해서 투쟁하는 문화전선의 대열에 적극 침여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1965년 7월 9일
재경문학인 일동
강원준 강위석 강신재 곽종원 곽하신 김광섭 김광윤 김남조 김동명 김 림 김상민
김상옥 김수영 김요섭 김용팔 김용호 김우정 김윤성 김재원 김종길 김현승 마해송
모윤숙 박경리 박경종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박상지 박성룡 박영준 박용구 박재삼
박종화 박해준 박홍근 박화성 방기환 서철규 선우휘 성춘복 송병수 신동엽 안수길
양명문 어효선 오상원 오영진 유강환 유주현 윤고종 윤석중 이문희 이상노 이원섭
이원수 이은상 이인수 이종기 이종환 이 탄 이 구 이흥우 장만영 장수철 전봉건
전영경 전숙희 정명환 정비석 정한숙 조병화 조지훈 주요섭 최인욱 최일남 최정희
하근찬 한말숙 현재훈 홍윤숙 황순원 (가나다순 이상 82명)
재경교수단 한 · 일협정 비준반대선언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엄연히 국민이다. 국민은 정부의 정책을 언제나 자유로이 비판하는 권리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민의 비등하는 여론을 최루탄과 경찰봉에 의한 폭압 및 가식에 찬 선전으로 봉쇄하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조와 애걸로서 굴욕적인 협정에 조인하고 말았다.
우리 교수 일동은 한·일협정의 내용을 신중히 분석검토한 끝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 자주성과 국가적 이익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뿐더러 장차 심히 우려할 사태가 전개될 것이 예견되므로 이에 그 비준의 반대를 선언한다.
첫째로, 기본조약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합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권의 약화 및 제반 협정의 불평등과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굴욕적인 전제를 인정해놓았다.
둘째로, 청구권은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재산상의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못 되고 무상제공 또는 경제협정이라는 미명 아래 경제적 시혜를 가식하였으며 일본자본의 경제적 지배를 위한 소지(素地)를 마련해주었다.
셋째로, 어업협정은 허다한 국제적 관례와 선례에 비추어 의당히 정당화되는 평화션을 포기함으로써 우리 어민의 생존권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고 국가어업을 일본어업자본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넷째로,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제 규정은 종래의 식민지주의적 처우를 청산시키기는 커녕, 철병 징용 등 일본군국주의의 강제 노력동원 등에 의해 야기된 제 결과를 피해자(재일교포)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비인도적 배신을 자행했다.
다섯째, 강탈로 불법반출해간 문화재의 반환에 있어서 정부는 과장적 나열에 그친 무실한 품목만을 ‘인도’받음으로써 마땅히 요구해야 할 귀중한 품목의 반환을 자진 포기한 결과가 되었다.
정부는 이 모든 희생을 무릅쓰는 이유가 일본과 제휴하여 반공세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주장, 미국 역시 이를 뒷받침하여왔다. 그러나 일본측은 여전히 한·일 국교정상화가 반공을 위한 조치는 결코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니, 굴욕외교의 명분은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겠는가.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맹렬히 반대하는 한·일협정의 비준을 정부가 그대로 강행하는 경우에는 한국을 위해서는 물론, 올바른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해서나, 전통적인 한·미간의 우호관계를 위해서나 불행한 결과만을 가져오리라고 우리는 단정한다.
이상의 모든 점을 고려한 끝에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당파적 이해를 초월하여 이 치욕적인 불평등협정을 결연히 거부하라.
둘째, 정부는 그동안의 애국학생들에 대한 비인도적 만행을 사과하고 구속학생들을즉시 석방하라.
1965년 7월 12일
재경대학교수단
(서명자)
강동진 강신항 강윤호 고범서 고성환 고영복 구연철 권오형 권우혁 권이묵 길현모
김 건 김경광 김경수 김경탁 김궤현 김규삼 김규태 김기범 김기호 김동길 김동식
김동욱 김명호 김병익 김상겸 김상협 김석목 김성근 김성두 김성식 김성준 김성태
김순응 김순회 김영덕 김영돈 김영일 김영호 김영훈 김완규 김용훈 김우탁 김유봉
김윤경 김윤석 김응렬 김재훈 김재희 김정준 김정중 김준민 김준엽 김진만 김진웅
김찬국 김채원 김치원 김태길 김황암 남상렬 노봉환 노정현 마경일 문상희 문창수
문효근 민경배 민광식 민병하 박경용 박광선 박기혁 박덕배 박동준 박두진 박배수
박병채 박성의 박수연 박승하 박영식 박영준 박인수 박종화 박창환 배용덕 백종기
서광순 서남동 서남원 서석순 성낙훈 성래운 성백선 소진탁 손승희 손현기 송갑호
송두용 송민호 송옥형 송정석 송종복 송태영 신순호 신일철 신태선 심치선 안병욱
양재현 양호민 엄영식 오기형 오병헌 오영근 오원철 오일홍 오형석 왕종순 우성구
유 령 유 준 유경노 유인호 유학노 윤덕진 윤원호 이 구 이가형 이갑섭 이경일
이광린 이군철 이규항 이규호 이규화 이극찬 이근식 이기백 이기열 이기영 이기을
이길상 이남덕 이능욱 이도진 이두현 이만갑 이병섭 이병현 이보연 이봉국 이봉호
이상용 이상일 이상종 이상호 이석윤 이석희 이세순 이수호 이영식 이영해 이영헌
이영협 이용두 이용희 이우성 이웅식 이원식 이응백 이재철 이정우 이정인 이제민
이종무 이종성 이종영 이종하李宗夏) 이종해李鍾河) 이주형 이태극 이하윤 이한용
이항녕 이해창 이혜숙 이효근 이훈섭 임근수 임상순 임원택 장기원 장덕순 장동환
장심현 장왕록 장익봉 전경인 전찬화 전형국 정명환 정범석 정병두 정병희 정석해
정연태 정영석 정은용 정인희 정증진 정한숙 조동필 조성식 조윤제 조지훈 조진하
주낙원 주요섭 지동식 지헌택 진세인 진원중 차기벽 최금덕 최대경 최동희 최명관
최수정 최옥환 최이순 최재희 최정훈 최종식 최주호 최진원 최현배 최호진 최흥재
탁희준 한기춘 한동섭 한배호 한봉세 한영기 한준석 한태동 함병춘 함홍근 홍사석
홍순각 홍순국 홍윤명 홍이섭 황산덕 황순원 (가나다순)
(당일 서명자)
임 갑 송선애 전응렬 정도영 이희봉 박노춘 김봉걸 김기웅 강빈국 이문원 박유봉
김영철 전경연 문덕수 오화업 홍순민 이갑규 손재준 이승렬 김병철 윤명로 조규갑
박시인 김순곤 김정년 이완하 임중기 이병도 방 곤 이문영 박기반 김철준 한창규
이명구 주선애 서정범 박상규 이용환 신연철 유승국 문익환 김봉식 김인명 이성삼
임진섭 한동세 김종현 정도영 유정동 차수권 유승조 오석규 남흥우 김성원 이인모
윤세원 심영섭 박준규 김영달 이창배 권혁소 이광신 손제석 송한진 허 웅 이규갑
이병조 이종찬 이병찬 박희법 홍성유 나사행 이윤중 백환규 정경석 김심수 윤세창
한상범 조규동 이가형 문동한 이우정 진세인 박성우 이정식 홍사모 황극덕 정도열
이종은 안영휘 이남표 박봉랑 윤 연 조동규 차경권 안승봉 국정효 장기욱 임창한
전광용 홍빈국 (무순)